12월31일. 또 한 해가 지났다. 다사다난이라기 보단 지난했던 한 해였다. 전염병으로 삶이 멈췄고 각자의 꿈은 제자리에 누웠다. 잠깐 멈췄다 간다기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사랑니를 뽑았다. 유난스럽게 자란 덕에 뽑고 나서도 몇주간 치과를 다녔다. 치과 의자에 앉으면 치위생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모니터에 띄운다. 모니터 왼쪽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정현 29Y 5M. 29년 5개월산(産)이라는 뜻이다.
몇몇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동안 타인의 나이 뒤에 숨었다. 조금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이 동기, 후배가 됐다. 창피스럽게도 그런 상황에서 위안을 찾았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치졸한 생각이었다.
얼마전 입사한 수습기자들의 자기소개를 읽었다. 나보다 나이많은 수습기자는 더이상 없었다. 내면의 방패가 사라졌다. 아무리 후회해도 더이상 만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구나.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이 정도밖에 못했구나. 자책감이 들었다. 결국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었다.
막다른 곳에 서서 되돌아본 2020년은 참 애틋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 돼 건강관리 한답시고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지만 2주 만에 코로나로 흐지부지됐다. 수영복까지 샀는데! 수영은 어그러졌지만 등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운동을 계속했다. 하반기엔 헬스장을 열심히 다녔고 백패킹도 다녀왔다.
독서량은 예년에 비해 확 줄었다. 책을 가려 읽어 그런 것 같다. 인생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후회하지 않으려고 멍청한 짓을 했다. 곱절로 후회 중이다. 조지 버나드 쇼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2021년은 도전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금새 적응할 줄 알았던 새 부서에선 반년 넘게 관심병사다. 이룬 것이 없어 보람과 긍지를 얻을 수 없었다. 새해에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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