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왜 그랬나 싶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멋진 꿈을 꾸던 적이 있었다.
몇년 전,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꿈을 이루는 게 꿈이라고 답했다. 꿈만 꾼건 아니고 나름 준비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전 9시에 도서관에 들어가 저녁 9시에 나왔다. 도서관에 앉아 멀리 도심 스카이라인 뒤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언젠가 꿈을 이뤄 이곳에서 나갈 거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응원했다.
특별히 뭔가 정해놓고 공부한 건 아니었다. 직장도 있었고 따야할 자격증도, 어학점수도 없었다. 그냥 앉아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그러다 질리면 영어를 공부했다. 그것도 질리면 패션을 공부했고 질리면 다시 독일어를 공부했다. 주말마다 그러고 앉아있으니 뭔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머릿속에 든건 많아지는데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내 꿈은 이 모든 걸 다 잘해야 하는 것이었다.
독일에 가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부업으로 패션 사진을 찍는 것. 내 기준에서 지금 생각해도 멋진 꿈이다.
그런 생활은 어느 순간 끝났다. 일이 바빠져서도 아니고 일신상의 변화 때문도 아니었다. 문득 어느 순간 그러지 않게 됐다. 일본 여행 때였나... 한참 길을 걷던 중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피곤할 수는 있지만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외국 여행을 가면 한 장면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던 나였는데 한낮에 피곤함을 느끼다니. 내 안에 나를 움직이던 뭔가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자신감이 사라졌고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주말에 그냥 쉬었다. 책장에 꽂힌 독일어 교재 위에는 먼지가 앉았고 카메라는 사둔 필름이 어디있는지 모를 정도로 잊혀졌다.
그렇게 1년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억지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접은 대신 현실에서 성과를 거두면 된다고. 어차피 예전에 공부하던 걸로 그 꿈을 이루긴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거라고. 나름의 성과는 거뒀다. 지금처럼 살고 있으니까.
계속 똑같은 얘기만 한다고 느낀 건 얼마 전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한 뒤 그걸 공유하는 게 취미였는데 어느 순간 나는 먹고 자고 쉬고 일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나 누구누구 알아", "그 기사 나도 봤어", "내가 이런걸 썼어 한번 봐봐" 따위였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하루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삶의 회의감이 강하게 밀려올 때 우연찮게도 강래우씨의 홈페이지가 생각났다. 거기에 들어가 몇시간을 구경했다. 이어 최창수PD의 책을 읽었고 양승우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뭐가 됐든간에 끝까지 멈춤없이 달렸다는 것이다. 지금 이걸 열심히 해서 뭐가 될까는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 이기기 위해, 남들 앞에 내세우기 위해 살고있는 내 모습과는 달랐다. 월터 미티가 된 기분이었다. 여러 군데서 나보고 좀 똑바로 살라 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트니 한 힙합가수가 말했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의 꿈을 꾸세요."
우왕좌왕 하다보니 어느덧 서른살이 저물어 간다. 몇살 까진 뭐하고 몇살 까진 뭐해야지, 라는 말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젠장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이런 게 후회인가. 이제는 내일 당장 시작해도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없고 내일 당장 시작할 자신마저 없다. 그래도 내 안에 나를 움직였던 힘을 다시 찾았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네이비실을 전역하고 하버드 의대를 졸업 후 NASA 우주비행사가 된 조니김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나만의 인생을 사는데 누구보다 뛰어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잘 살자. 후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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