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세뱃돈

서른 넘어 할머니께 세뱃돈을 받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몇년이 지나도록 돈한푼 쥐어드린 적 없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이번 명절에도 선뜻 봉투를 내미셨다.


봉투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지난 10여년의 경험으로 잘 안다. 할머니께서 세뱃돈을 건네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특별하지 않게 사랑하는 모습을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지낸 시간이 참 많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 내가 배고프면 밥을 해주셨고 심심해 하면 놀아주셨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다리를 두들기며 놀았던 건 마치 엊그제 같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명료한 이유는 그가 지금도 예전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견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대가없는 사랑. 그리고 일방적인 사랑 말이다.


지금도 할머니는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데도 우리가 찾아가면 항상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오신다. 떠날때 몇번이고 나오지 마시라 해야 한껏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신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마중과 배웅은 귀찮아질 수 있는데 할머니께는 그런 게 없다.


성인이 돼 세상에 나온 뒤로 할머니처럼 사랑하고 싶었다. 알게 모르게 돕고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기엔 나에게 할머니와 같은 마음이 없었다. 각박한 현대사회와 조급해진 마음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할머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나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이었을까.


성경은 구제에 있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정말 어려운 말이다. 누구든지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받길 원하고 내가 잘해준 만큼 대접받길 원한다. 보상을 위해 우리는 생색을 내고 작은 일을 크게 부풀린다.


짧은 연휴를 마치고 할머니댁을 떠나는 날 지붕을 올려다 봤다. 기왓장이 깨지고 떨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변해가는 내 모습과 낡아가는 할머니댁 모습 속에서 할머니의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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